'도서관'에 해당되는 글 3

  1. 2007/02/25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2. 2006/09/1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 2004/04/23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2007/02/25 21:38 | Posted by dewy


사람이란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의 의미를 잃기 쉬운 법,
행복이란 게 뭔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무심코 인생을 업신 여길 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입을 벌리고 있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이건 틀림없이 행복하다는 증거이다.



- 할아버지의 유언장 中 -



TAG 행복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06/09/18 23:44 | Posted by dewy
제 3부 이해받지 못한 말들

(여자)
프란츠의 아버지가 느닷없이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어느 날 문득 어머니 혼자 남게 되었던 것은 그의 나이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다. 프란츠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고 의심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평범하고 차분한 말투로 비극을 감추었다. 시내를 한바퀴 돌자고 아파트를 나오는 순간, 프란츠는 어머니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당황했고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두려웠다. 그는 어머니의 발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두 시간 동안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걸어야 했다. 그가 고통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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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배신)
그러나 B를 위해 A를 배신했는데, 다시 B를 배신한다 해서 A와 화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혼한 여자 예술가의 삶은 배신당한 그녀 부모의 삶과는 닮지 않았다. 첫번째 배신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첫번째 배신은 그 연쇄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배신들을 야기하며, 그 하나하나의 배신은 최초의 배신으로 부터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이끌게 마련이다.




제 5부 가벼움과 무거움

이미 말했듯 소설의 인물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머니의 육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황, 문장,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본질적인 것은 언급되지 않았던, 근본적 인간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메타포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작가란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말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마당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 사랑이 고조된 순간 뱃속에서 끈질기에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 : 배신하고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배신의 길 중간에서 멈출 수 없는 것 : 대장정의 행렬 속에서 주먹을 치켜드는 것 : 경찰이 숨겨둔 도청 마이크 앞에서 유머 감각을 과시하는 것 등. 나도 이런 상황을 겪어 보았다. 그러나 나의 이력서 상의 내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내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해 갔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바로 이 경계선(그 너머에서 나의 자아가 끝나는)이 나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오로지 경계선 저편에서만 소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신비가 시작된다.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 속에서 인간적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제 6부 대장정

최근에 와서도 책 속에서 똥이란 단어가 점선으로 대치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물리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똥이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노릇이 아닌가! 똥과의 불화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배설의 순간은 창조에 있어서 수락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일상적 증거이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 똥은 수락할 만한 것이다, 라거나(그렇다면 화장실 문을 잠그고 들어앉지 말아야 한다!) 또는 우리가 창조된 방식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 중에서.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란,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
이것은 감상적이었던 19세기 중엽에 생겨나 그 이후 다른 모든 언어에 퍼졌던 독일어 단어다. 그러나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함에 따라 그것이 지닌 원래의 형이상학적 가치가 지워졌는데, 말하자면 키치란 본질적으로 똥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다 : 문자적 의미나 상징적 의미에서 그렇다: 키치는 자신의 시야에서 인간 존재가 지닌 것 중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배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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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왕국에서는 가슴이 독재를 행사한다.
물론 키치에 의해 유발된 느낌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감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키치는 과감한 짓을 할 수 밖에 없다 : 키치는 인간의 기억력 속에 깊이 뿌리내린 핵심적 이미지에 호소한다 : 배은망덕한 딸, 버림받은 아버지, 잔디밭 위를 뛰어가는 어린아이, 배신당한 조국, 첫사랑의 추억.
키치는 백발백중 두 방울의 감동적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첫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번째 눈물에 의해서이다.
모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은 오로지 이 키치 위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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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가 거짓말로 인식되는 순간, 그것은 비-키치의 맥락에 자리잡게 된다. 키치가 권위적인 힘을 상실하면 그것은 모든 인간의 약점처럼 감동적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해도 키치는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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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네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익명의 무수한 시선, 달리 말하자면 대중의 시선을 추구한다. 독일 가수와 미국 여배우가 이런 경우에 속하며 주걱턱의 신문기자 역시 이런 경우에 속한다. 독자들에게 익숙해져서 그의 주간지가 소련인에게 정간당하자, 그는 백 배나 산소가 희박해진 공기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는 누구도 수 많은 미지의 시선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는 곳마다 경찰의 미행을 받고, 전화를 걸 때마다 도청당하고, 심지어는 거리에서 은밀하게 사진까지 찍힌다는 사실을 알았다. 갑자기 익명의 시선이 도처에서 그를 따라 다녔으며, 그러자 그는 숨을 쉴 수 있었따! 그는 행복했다! 그는 연극배우 같은 목소리로 벽에 숨겨진 소형 마이크에 대고 소리치곤 했다. 그는 경찰 속에서 잃어버린 관객을 되찾은 것이다.
두번째 범주에는 다수의 친숙한 사람들의 시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속한다. 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칵테일 파티나 만츤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중을 잃으면 그들 인생의 무대에 불이 꺼졌다고 상상하는 첫번째 범주의 사람들 보다는 행복하다. 반면 두번째 범주의 사람들은 언제나 어떤 시선을 획득하는데, 마리클로드와 그녀의 딸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세번째 범주가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의 조건은 첫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그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감기면 무대는 칠흑 속에 빠질 것이다. 테레사와 토마스를 이런 사람들 속에 분류해야만 한다.
끝으로 아주 드문 네번째 범주가 있는데,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몽상가이다. 예를 들면 프란츠가 그렇다. 그가 캄보디아 국경까지 간 것은 오로지 사비나 때문이다. 버스가 태국의 도로에서 덜컹거릴 때, 그는 그녀의 시선이 오랫동안 그에게 고정되었다고 느낀다.
토마스의 아들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나는 그의 이름을 시몽이라 부르겠다(그는 아버지처럼 성서에 나온 인물의 이름을 가졌다고 기뻐할 것이다). 그가 희구하는 시선은 토마스의 시선이다. 서명 캠페인에 연루되는 바람에 그는 대학에서 내쫒겼다. 그가 교제하던 젊은 여자는 시골 신부의 조카딸이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하여 집단 농장의 트랙터 운전사,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토마스도 시골에 사는 것을 알자 기뻐했다. 운명이 그들의 삶을 대칭적으로 만들었다고! 그것 때문에 그는 토마스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는 답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 토마스가 그의 삶에 시선을 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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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쿤데라 할부지.
키치 속의 키치.
너와 나의 키치.
당신의 키치와 나의 키치가 만들어내는 키치.

가벼움과 무거움.
제목에서 부터 오는 극단적인 키치로 감춘 적나라함.

2006.9.19. 12:32 am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2004/04/23 01:14 | Posted by dewy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엇갈린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예쁜 여자아이는 아니다. 눈에 띄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끈질기게 달라 붙어 있고, 나이도 적지 않다. 벌써 서른에 가까울 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자아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녀를 알아볼 정도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땅울림처럼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버린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좋아하는 여자아이 타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발목이 가느다란 여자아이가 좋다든지, 역시 눈이 큰 여자아이라든지, 손가락이 절대적으로 예쁜 여자아이라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천천히 식사하는 여자아이에게 끌린다든지와 같은 식의 .
나에게도 물론 그런 기호가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아이의 코 모양에 반해 넋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유형화하는 일은 아무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코가 어떻게 생겼었나 하는 따위는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아니, 코가 있었는지 어땠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다는 사실뿐이다. 왠지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어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길에서 엇갈렸단 말이야."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흠, 미인이었어?"
라고 그가 묻는다.
"아니야, 그렇진 않아."
"그럼, 좋아하는 타입이었겠군."
"글쎄, 생각나지 않아.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이 큰지 작은지,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다구."
"이상한 일이군."
"이상한 일이야."
"그래서 무슨 짓을 했나? 말을 건다든지,뒤를 밟는다든지 말야."
"하긴 뭘해, 그저 엇갈렸을 뿐이야."
그녀는 동에서 서로, 나는 서에서 동으로 걷고 있었다.
제법 기분이 좋은 4월의 아침이다. 비록 30분이라도 좋으니 그녀와 이야기를하고 싶다. 그녀의 신상 이야기를 듣고도 싶고, 나의 신상 이야기를 털어놓고도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1년 4월 어느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엇갈리기에 이른 운명의 경위같은 것을 밝혀 보고 싶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낡은 기계처럼, 따스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어딘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우디 앨런의 영화라도 보며, 호텔방에 들러 칵테일이나 뭔가를 마신다. 잘만 하면, 그 뒤에 그녀와 자게 될 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나와 그녀의 사이는 벌써 15미터 가량으로 좁혀졌다.
자,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면 좋을까?
"안녕하세요. 단 30분만,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까?"
이건 너무나 바보스럽다. 마치 보험 권유 같지 않은가.
"미안합니다. 이 근처에 혹시 24시간 영업 세탁소가 없는지요?"
이 역시 같은 정도로 바보스럽다. 무엇보다도 내 손에 세탁물 주머니조차 없지 않은가. 누가 그런 대사를 신용하겠는가?
어쩌면 솔직하게 말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나에게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입니다."
아니, 틀렸어. 그녀는 아마도 이런 대사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믿어준다 해도, 그녀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있어 내가 100퍼센트의 여자라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 당신은 100퍼센트의 남자는 아닌걸요, 죄송하지만."
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만약 사태가 그렇게 되면 나는 틀림없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나는 그 쇼크에서 두번다시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나이 벌써 서른두 살,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건 그런 것이 아닐까.
꽃가게 앞에서, 나는 그녀와 엇갈리게 된다. 따스하고 조그마마한 공기 덩어리가 피부에 와 닿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위에는 물이 뿌려져 있고, 언저리에서는 장미꽃 향기가 풍기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도 없다. 흰 스웨터를 입은 그녀는 아직 우표를 붙이지 않은 흰 사각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것이다. 그녀의 눈이 졸린듯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하룻밤 동안 그것을 썼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각봉투에는 그녀에 관한 비밀이 전부 들어 있는지도모른다.
몇 걸음인가 걷고 나서 뒤돌아 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혼잡한 사람들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 때 그녀를 향해 어떻게 말을 걸었어야 했는가를 확실히 알고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너무나도 긴 대사이므로 틀림없이 제대로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실용적이지 못하다.
아무튼 그 대사는 '엣날 옛적에'로 시작되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로 끝난다.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예쁜 소녀도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디엔가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기적'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라워,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
하고 소년이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모든 것이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야. 꼭 꿈만 같아."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손을 잡고 언제까지나 실컷 얘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기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자신은 그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되고 있다.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이미 우주적인 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을 얼마 안되는, 극히 얼마 안되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진정한 100퍼센트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도 역시 서로가 서로의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구. 알겠니?"
"응, 알았어."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쪽과 동쪽으로.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시도해 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말이다.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100퍼센트 완벽한 연인이었으니까. 그것은 기적적인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어려서, 그런 것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석처럼 비정한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마구 농락하기에 이른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 주일이나 사경을 헤멘 끝에, 옛날 기억들을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리속은 마치 D.H. 로렌스의 소년시절 저금통처럼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참을성 있는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다시금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아 하느님, 그들은 진정 확고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ㅡ완벽하지는 못해도 75퍼센트의 연애랑,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서른 두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살이 되었다.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뒤안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같은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엇갈린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은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엇갈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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